[특별기고] 여름철 질식재해 예방해야/강성규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보건국장
관리자
2007-06-27 2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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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십 수년 전만 해도 여름철이면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물놀이를 하던 형제나 친구 두세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맨처음에 한 사람이 물놀이를 하다가 빠졌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를 구하려 물에 뛰어들었다가 모두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다. 형제나 친구가 물에 빠져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되니 이들을 구하기 위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물에 뛰어들었다가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이었다.
이것은 위험에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전준비 없이 달려드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행히 국민들의 비상시 구조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이제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고 무작정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찾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산업현장에는 이와 같은 무모한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주말 경기도 양주시 음식물쓰레기 폐기처리탱크에서 청소작업 중에 질식해 쓰러진 동료 근로자를 구조하기 위해 탱크로 들어갔던 근로자가 함께 숨졌다. 이런 구조 중에 발생한 재해는 전체 질식재해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질식재해 사고 소식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지난 8년간 111건의 밀폐공간 재해가 발생, 149명이 숨지고 51명이 손상을 입었다. 이들 재해의 41.6%가 6∼8월에 집중 발생했다. 특히 2005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재해자의 20∼30%는 쓰러진 동료 근로자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사고 장소에 들어갔다가 숨졌다. 여름철에 유독 질식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온이 상승하고 잦은 호우로 미생물 번식이 활발해지면서 맨홀이나 저장탱크와 같은 밀폐공간에 산소부족 현상이나 유해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밀폐공간 질식재해 근로자들이 사망하는 이유는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기 중 산소가 18% 이하가 되면 뇌에 산소결핍을 초래하고 10% 이하가 되면 의식을 잃게 된다. 저산소증이 되면 본인이 사고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뇌세포의 저산소증으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고 신체도 무력화돼 재해 장소를 스스로 벗어나지도 못한다. 따라서 쓰러진 동료 근로자를 구하기 위해 보호장비 없이 밀폐공간에 뛰어드는 것은 방화복 없이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질식재해는 원인이 명확한 만큼 예방도 아주 간단하다. 산업안전공단은 최근 밀폐공간의 질식사고 예방을 위한 3대 안전수칙을 발표했다. 우선 구조에 대한 기본수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는 작업 전에 산소 농도나 유해가스 농도를 반드시 측정해야 한다. 안전공단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장비로 간단히 측정할 수 있다. 둘째,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하기 전 내부의 공기를 충분히 환기해주는 것이다. 환기만 제대로 되면 산소 농도는 금방 정상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던 동료 작업자가 쓰러졌다고 해서 이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무조건 뛰어 들어가서는 안된다. 반드시 산소 공급이 되는 송풍마스크를 차고 들어가야 한다. 방독면은 유해가스 흡입은 막을 수 있지만 산소 부족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착용하지 말아야 한다. 안전장비가 없으면 안타깝더라도 전문구조대에 연락하고 기다려야 한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철저히 지킨다면 밀폐공간에서의 불행한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
안전사고에 예고란 있을 수 없다. 사고 위험이 있는 작업이나 작업 장소에 대한 올바른 안전조치와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터에서 운을 기대하기보다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