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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정보

왜 서서 일해야 하나?

관리자 2007-12-20 16:51:35 조회수 3,788
백화점, 대형 할인마트, 유통업체 등 서비스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과 일상적으로 대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들 노동자들의 업무와 노동환경, 그리고 건강에 대한 관심은 미흡하다. 앞으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산업재해나 직업병이라고 하면, 제조업 혹은 금속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겪는 문제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정규직, 영세,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과 서비스유통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특히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관련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장시간 서서 일하면 근골격계 질환 발생

“사회적으로 알아주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일수록 더 장시간 서서 일할 것을 강요 받는다.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직업에서는 의자에 앉지 않고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즉, 노동의 대한 귀천의 차별이 노동자를 서서 일하게 만든다.”


영국의 노동안전보건단체 ‘Hazards’은 “100년 전부터 영국의 의사들은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 위험을 경고했으나, 영국에서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하루 대부분의 노동시간을 서서 일하도록 강요 받고 있다”며,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가장 최근에 조사한 직업병 관련 자료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가장 흔한 직업병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서 17%가 다리 쪽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정부는 19만2천명의 노동자들이 영국에서 직업에 따른 다리 이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영국에선 각종 연구 결과들이 “계속 서서 일하는 경우, 하지정맥류나 만성 정맥부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심혈관계질환이 있던 사람은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 다리와 발의 통증은 계속 서서 일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최근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안전보건 의제 개발”과 관련하여 연구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홈에버, 뉴코아 여성들 “허리 다리 통증, 방광염” 호소

우리 사회에선 최근 이랜드 사태를 통해, 유통서비스업계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존재가 사회 전면으로 부각된 바 있지만, 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건강의 문제에까지 관심이 진전되지는 못하고 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요구한 내용은 ‘고용안정’이 우선이었는데, 잠시라도 이들을 만나 인터뷰해 보면 ‘서서 일하는 노동’의 고통과 만날 수 있었다. 서서 일하면서 하지정맥류가 발생했다거나, 허리나 다리 통증을 앓고,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방광염으로 고생한다는 것이다.

10년 가까이 대형마트 매장에서 서서 일해왔다는 김선옥(가명, 55세)씨는 ‘신선식품부 같은 경우는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 대부분 가정이 있는 여성들인데, 아침 해놓고 나오려면 5시에 일어나야 하니. 대부분 잠이 부족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기 때문에 앉을 수도 없는 처지인데, 쉬는 시간에야 수면실에 올라가 잠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구)까르프부터 홈에버까지 10년 가까이 일한 한미자(가명, 50세)씨도 하루 종일 매장에서 서서 일하거나, 캐셔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 하지정맥류와 허리, 다리 통증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을 위해서 “잠시라도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까르프에서 일했던 조합원들의 이런 고충을 받아들여 노동조합이 사측에 수면실과 휴게실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마련한 수면실과 휴게실인데, 이랜드가 까르프를 인수해 홈에버로 바뀌면서 이 공간들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의료진들은 파업 중인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을 방문해 진찰을 하고선 “홈에버 및 뉴코아 노동자들 대부분이 방광염, 위염, 근골격질환을 앓고 있다”고 진찰결과를 이야기한 바 있다.

영국 노동조합,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노동조합 활동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노동조합의 투쟁 역사 중 ‘서서 일하는 문제’는 언제나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관련한 주요한 의제 중 하나였다.

영국에서 소매업 종사자와 보험설계사, 콜센터 노동자 등으로 조직된 34만 명 규모의 노조인 ‘USDAW’는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구호를 안전보건 주요 요구로 내걸고 있다.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기 위한 노조의 활동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고, 일부 회사에선 노조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노동자에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기도 했다.

최근 USDAW가 관심을 갖는 문제는 부츠 상점의 계산대 문제다. 새로운 계산대가 도입되고 있는데, 이 계산대는 서서 일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는 것. USDAW 측은 부츠 상점의 계산대 문제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보고, “부츠 상점의 상품들은 계산대에서 충분히 앉아서도 다룰 수 있는 상품들이다. 따라서 의자를 제공하는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일례로 2005년 런던에서 있었던 폭탄테러 이후, 영국의 갤러리들이 복도에 있던 소파를 치운 사례가 있었다. 이 소파는 미술품을 전시한 갤러리에서 경비를 보는 노동자들이 순찰을 돌다가 잠깐씩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확보된 것이었는데, 테러 이후 순찰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갤러리 측이 소파를 치운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이 문제제기를 했고, 투쟁의 성과로 소파를 다시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노조, 여성노동자 건강문제에 관심 가져야

이에 반해 한국은 노동조합 역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과 작업환경 문제에 대해 소홀히 다룬 감이 있다. 늦었지만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의 건강 실태에 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실태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신범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 외국과 같은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하여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 277조, 의자의 비치)

김신범 연구원은 관련 법이 있지만, 문제는 “정부가 규제를 마련해 놓고서 그것을 지키도록 사업주를 유도하거나 관리 감독하는 행정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가 문구에 불과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 연구원은 “노동조합 역시 조합원의 건강권을 지켜야 하다는 인식이 부족하여 구체적인 고민을 진행해오지 않았다”면서, 법이 있어도 현재는 쓸모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모두 한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2008년 백화점에, 대형 마트에 의자를 놓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일다(여성주의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