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석면 방치
관리자
2008-01-15 16: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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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천장 등에서 떨어지는 석면 가루로 시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죽음의 먼지'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은 호흡기를 통해 사람의 폐 등에 들어가 암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독성물질이다. 방음과 방열에 좋다는 이유로 석면을 사용한 천장과 벽 등이 지하철 곳곳에 널려 있지만, 관계당국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아직껏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
◆석면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지하철역
석면 폐해가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인 서울지하철 2호선 방배역.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 방배역은 말 그대로 위험한 수준이었다. 천장에서 흘러내린 엷은 노란색 석면 가루가 승강장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석면이 칠해진 천장 가운데 일부는 겉칠이 벗겨져 곧 조각으로 부서져 내릴 듯했다. 하지만 지하철 이용객들은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석면 가루가 떨어진 승강장 바닥 옆을 유유히 지나다녔다.
방배역의 석면 실태는 이미 작년 7월 파악됐다. 한양대 산학협력단이 서울메트로의 의뢰를 받아 만든 방배역 '석면 지도'를 보면, 이처럼 석면 가루가 흩날릴 가능성이 높은 23개 지점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 매표실과 방송실 내부, 계단 위, 민원실 바닥 등 지하철역 내 대부분 장소는 석면 자재가 쓰였다. 승강장 천장과 터널 내 환기실 등은 석면이 공기 중에 날릴 위험이 높은 곳으로 지적됐다.
이런 상황은 방배역뿐만 아니다. 작년 1월 서울메트로 노사가 자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2~4호선 지하철역 가운데 방배역을 비롯한 17개 역에서 석면이 들어 있는 건축자재가 쓰였거나, 승강장이나 선로 위 천장에서 석면 가루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노동부가 실시한 지하철 근로자들의 건강영향 조사결과를 봐도 석면 피해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서울메트로의 조사대상 직원 2972명 중 909명이 폐흉막(폐 표면에 밀착해 있는 늑막)이 두꺼워지는 등 석면이 원인 물질로 추정되는 건강 이상 증상이 발견됐다. 10명 중 3명꼴이나 됐다.
◆전문가 "위험하다" vs. 서울메트로 "괜찮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하철역 석면 대책은 표류하다시피 하고 있다. 서울메트로측은 작년 7월, "2008년 1월 중에 방배역을 일시 폐쇄하고 석면 제거 공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13일 현재 시공업체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다. 1호선 신설동역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업체의 기술로는 석면을 안전하게 제거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 현재 공사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이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석면 문제가 심각한 17개 역 중 나머지 15개 역은 2009년까지 실태 조사만 계획돼 있다. 때문에 앞으로 최소 2년간은 이 지역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석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측은 "석면 가루가 승강장 바닥에 떨어져도 날릴 위험이 없어 몸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공기 중의 석면 농도 역시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석면이 검출된 17개 지하철 승강장의 실내공기를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해도, 공기 중의 석면 농도가 기준치보다 적게 나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양대 노영만 교수는 "승강장 바닥에 떨어진 석면은 지하철이 오가며 일으키는 바람에 날려 호흡기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지점에서 석면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며 "시급히 공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상준 책임연구원도 "면역력이 낮고 호흡량이 많은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 공기 중에 아주 적은 양의 석면이 포함돼 있어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석면
석면은 머리카락 5000분의 1 굵기의 먼지 형태로, 사람 몸에 들어가 폐암 등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다. 일단 몸에 들어간 석면은 10~40년이 지나 발병할 정도로 잠복기간이 길지만, 석면이 얼마만큼 폐 속으로 들어가야 병으로 이어지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방음과 방열 효과가 좋아 지하철역을 비롯, 1970~1980년대 지은 대부분의 국내 건축물에 석면이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