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근로자도 '환자'
관리자
2008-03-24 11: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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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다 AIDS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호사가 감염 7년이 지난 후 사망했다는 영국의 외신보도가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간호사는 장갑을 끼고 있었음에도 뇌손상을 입은 환자로부터 비응급 혈액 검사를 위해혈액을 채취하다 변을 당했다.
이처럼 직무 중에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결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병원에서 과도한 노동을 하는 병원 근로자들의 피로누적은 의료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처럼 의료인의 역의료사고와 업무로 인한 각종 질환으로 환자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병원 근로자들은 안녕치 못하다.
◇ 보호구 지급하는 병원 10곳 중 4곳뿐
노동부는 최근 병원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한 보건관리 실태가 허술하다고 지적하고, 의료기관 종사자 보건관리 강화방안 마련에 나섰다.
산업안전공단의 ‘의료기관 보건관리 기술지원’ 분석결과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보호구 지급률은 46.7%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실시율도 각각 42%, 40% 수준이었다. 또 병원 근로자들 중에는 2007년 10월 현재 업무로 인해 222명이 근골격계질환에, 54명이 병원체로 인한 감염성질환에, 34명이 뇌심혈관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 병원 근로자들에 대한 보건관리가 양호할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근로자들의 보건관리 실태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강정국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병원 근로자들의 업무는 백화점식 노동에 가깝다”며 “실제로 많은 간호사와 의사 등 병원 근로자들이 환자를 직접 이동시키면서 근골격계질환을 앓게 된다”고 말했다.
병원 근로자들이 안녕치 못한 데에는 이 뿐 아니라 과도한 근무도 한 몫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의 전공의 근무지침에는 전공의의 정규 근무시간은 1일 12시간, 1주 60시간의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실시되는 주 40시간 근무제와는 동떨어진 근무지침이다.
이 지침에서는 전공의는 당직을 포함해 연속 48시간 초과 근무를 금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시간을 초과한 근무시간은 수련과정으로 간주하고 있다.
◇ 병 고치는 사람 병, 누가 예방하나
노동 전문가들은 병원의 경우 근로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게 되면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철저한 보건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부 근로자건강보호과 관계자는 “정부가 그동안 의료기관 보건관리 실태조사 등을 통해 2005년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에 대한 병원들의 교육과 홍보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관리자 전담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등의 강화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소병원의 경우 보건관리 전담자가 없을뿐더러 보건관리자가 있는 병원들도 제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보건관리자를 문제로 지적했다.
강정국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병원의 보건관리자에게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서의 중립적 역할이 요구된다”며 “그러나 이 보건관리자를 사용자측에서 임명하다 보니 병원의 입장만을 대변해 근로자에 대한 보건관리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측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통해 실질적인 노동안전문제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 환자의 치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병원 근로자들을 위한 안전한 여건이 가장 우선돼야 함에도 불구, 그동안 이에 대한 병원과 정부의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병원감염 예방을 비롯해 보건관리에 투자하는 비용을 보험급여상에서 수가로 인정해주는 등의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