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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도 유행이 있다

관리자 2008-05-03 10:53:54 조회수 4,242
산업의 발달로 인해 우리 사회는 고도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해 왔다. 이에 따라 직업과 고용의 형태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세분화되고 전문성을 띤 직업들은 생산성의 효율성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정작 그 쾌거의 단맛을 실감하지 못하는 부류는 '근로자'들이다.

업무환경이나 조건 등을 따져봤을 때도 분명 과거에 비해서 훨씬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효율적인 생산구조 아래 정작 근로자들 자신은 비효율적이라고 느끼는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원인을 본인도 알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병에도 '유행'이 있고 '변천사'가 있다. 이런 시대흐름을 정부와 회사, 근로자 3박자가 체계적인 제도 아래 따라가 줘야 한다.

근로자의 날(5월1일)을 맞아 과연 요즘 '뜨는' 신종 직업병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런 직업병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원인은 무엇인지 점검해봤다.

◇ 산업화 효율성 ↑ 스트레스 ↑

직업병도 전반적인 트렌드를 봐야 한다. 1970~1980년대는 중화학 공업과 첨단 산업의 발달로 농업 중심 사회로부터 공업 사회로 변모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부족한 작업환경 설비와 인식 때문에 벤젠, 카드늄 중독, 유황화탄소 같은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사건이 많았다.

그 결과로 많은 근로자들이 신경기관의 장애, 비중, 수은중독 등의 화학성 직업병을 많이 앓아야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정보통신의 발달로 어깨, 손목, 관절에 무리가 오는 근골격계성 질환들이 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분야를 차지하고 있는 직업병도 이 근골격계 질환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IMF)로 인해 고용형태의 변화와 3차 산업인 서비스산업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과거에는 화학물질에 의한 '직업병'이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근로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작업관련성 질환'이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근골격계질환 및 뇌·심질환 등의 작업관련성 질환은 2002년 이후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2006년도에는 80%의 근로자들이 작업관련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이슈화되고 있는 작업관련성 질환은 무엇보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사회 특성상 모든 조직개편에 있어 최소의 조직으로 최대의 이윤을 남기려 하기 때문에 이와 함께 가중되는 것은 근로자의 스트레스성 질환이 대부분이다.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임종한 교수는 "우선 업무자체가 효율화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인사관리와 조직 관리에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패턴이 산업화 전체적으로 따져봤을 때는 훨씬 이익이지만 그만큼 근로자들의 작업관련성질환은 깊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뿐 아니라 교대근무나 야간근무, 비정규직 같은 근무 형태에 대한 변화로 얻을 수 있는 생산력의 증대나 효율성은 극대화되지만 개인에게는 반복되면서 점점 세지는 업무강도로 인해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임 교수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분석할 때 자신의 고용형태가 안정적인지, 비안정적인지를 봐서 불안정한 조건일수록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전한다.

더군다나 핵심부서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외주나 하청으로 돌려 이윤을 높이는 등 근로자들 개개인의 노동 강도는 강화되지만 자신이 관여하는 일에 결정권은 없으면서 갑자기 근무패턴이나 조건의 변화로 심리적 압박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은 업무량은 많아졌지만 직무고용형태의 불안정도는 높아지고 보상은 적은 반면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바뀌면서 증가하는 상하조직 문화, 가족과 직장간의 갈등으로 인해 증가하는 스트레스는 근로자들에게 정신장애, 뇌심혈관질환 등 각종 스트레스성 작업관련성 질환을 앓게 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 출·퇴근 시간 길어질수록 면역기능 '저하'

이런 근무형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의 신체적 위해성은 생각보다 크다. 단기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장기적인 양상을 띠는 경향이 강하고 하나의 원인으로서만 기인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측도, 본인도 '병'의 원천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업관련성 질환 등을 측정하는 도구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산재를 증명할 정도의 수준까지는 못 미치는 아직 초보단계의 도구들이 많고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는 직업성스트레스학회에서도 아직까지는 객관적인 지표를 내놓기에는 역부족인 단계다.

현재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흔한 질환은 교대근무나 변형근로, 스트레스로 오는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과 이런 질환들의 합병증으로 뇌졸중, 심근경색 등이다.

특히 변형근로는 신체리듬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교감신경에 과다한 긴장조건이 형성된다. 이는 또다시 신체면역시스템에 변화를 불러와서 면역기능의 저하와 혈압이 상승하는 등 만성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구조로 바꿔 놓는다.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여러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런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할 경우 독성물질이 쌓여 동맥경화증 같은 혈관질환에 노출된다. 또한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는 수면 중에 분비되는 멜라톤의 분비를 억제시켜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한다.

이뿐 아니라 도시변화의 상황도 같이 맞물리면서 건강수위도 함께 영향을 받는 것이 문제다.

대개 장거리를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밀리는 차로 인한 스트레스와 운동량의 감소라는 부작용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운동량이 감소하면 신체내의 독성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항산화능력의 감소와 체중의 변화로 당뇨나 동맥경화증의 발병률이 쉬워지며 식단에서 오는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게 된다.

임 교수는 "출·퇴근 시간이 길어질수록 간기능과 면역기능의 저하, 산화손상으로 인해 독성물질이 나오게 됨으로써 정상적인 세포에 있는 분자구조를 망가뜨려 혈관자체에 손상이 온다"고 주의한다.

혈관이 손상되면 그 안에 이물질이 끼거나 간 손상으로 인해 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산업적 현상과 관련된 '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

◇ 여성 근로자, 직장일 힘들면 집안일도 영향

특히 이런 현상들은 여성들에 있어 더욱 취약하다. 더군다나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는 많아졌지만 사회적 구조자체가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는 점도 여성들이 작업관련성 질환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여성들 경우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거나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두 가지의 스트레스 형태를 같이 안고 가는 경우가 많아 남성들보다 훨씬 더 작업관련성 질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동하는 여성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여성들의 작업관련성 질환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자세히 분석된 연구가 많지 않다.

단지 여성들의 신체적구조로 인해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증이 증가된다는 것 외에 만성질환에 있어 남성들과 비교해봐서 동의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반도체공장은 여성 근로자가 많아 현재 암 같은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조사가 착수돼야 한다는 주장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미칠 영향과 회사가 입을 막대한 경제적 타격에 정부에서도 정확한 조사를 들어가고 있지 못해 과학적으로 증명할 만큼의 데이터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의들이 우려하고 있는 문제다.

한양대 산업의학과 송재철 교수는 "외국 자료에 의하면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에게는 폐암, 방광암, 흑색종, 악성흑색종, 구강암, 인두암같은 호흡기 계통 암, 뇌종양, 림프혈액종, 소화기계암 등이 발병된 기록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반도체공장은 외부적으로는 일류급 작업환경과 시설로 근로자들의 복지를 우선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근로자들의 건강조차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예로 반도체공장에서 마스크나 특수 작업복을 착용하는 이유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기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에게 나오는 침, 내뿜는 숨, 머리에서 나오는 비듬, 옷의 먼지, 각종 화장품의 화학물질로부터 기계오류를 범할까봐 기계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착용하는 것이다.

한편 직업의 세분화와 다양화로 인해 예전과는 달리 색다른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예전보다 늘어난 여성근로자들은 직장생활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자아성취의 개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집안일이 힘들어도 직장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교수는 "예전에는 여성들이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회사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조사결과가 있었지만 요즘 조사들은 예전의 연구 자료를 뒤엎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한다.

최근 연구 자료들을 보면 여성들 경우 직장일이 힘들면 집안일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집안일로 인해 직장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남자가 더 크다는 재미있는 연구결과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조사들을 기초로 가정과 직장 내의 근로자들의 상관관계나 스트레스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 산업보건 서비스의 미래, '공공성'만이 살길

사회가 발전할수록 스트레스성 작업관련성 질환이 늘어나고 있어 외국의 경우는 큰 기업체의 경우 심리상담사들이 상주해 있고 조그만 회사의 경우에는 심리상담사 상담을 받도록 지원해주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IMF이후 규제개혁으로 인해 1000명 이상의 사업장에 의사가 상주하도록 돼 있던 규제들이 완전히 풀려버린 상태여서 정작 회사와 정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근로자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돼 버린 것이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들의 인력난으로 인해 제도차제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면 전문 심리상담사와의 상담이라도 받도록 배려해 줘야 하는 것이 현대 보건산업의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의 산업보건 사업의 기준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의들이 우려하는 내용이다.

송 교수는 "앞으로의 산업보건은 공공성을 가진 영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회사에 자율성을 부여하면 산업보건사업의 우선순위를 굉장히 낮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책임을 지고 전체적인 산업보건사업을 주도해 가야 한다는 것.

현재 산업보건서비스에 의해 들어오는 수입은 전체 수입의 1/3밖에 안되기 때문에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서 종합검진서비스 같은 개인적인 성격의 서비스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산업보건기관들이 처한 현실이다.

때문에 산업보건기관들의 서비스 양은 많지만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우리나라 근로자가 2500만인데 비해 산업재원은 300억 원 밖에 안 된다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최근 정부는 자유시장경제원리에 의한 이익창출이 아니라 산업보건서비스의 공공사업을 위한 첫걸음으로 내년 7월중에 모든 사업장의 검진비용을 '3자 지불방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 방식으로는 회사와 산업보건기관이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검사결과 근로자에게 작업관련성 질환이 나오더라도 사측이 병원기록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공공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보건기관에는 정부차원에서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