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에 신음하는 산업역군들
관리자
2008-11-25 15: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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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사는 어디로 가버리고 산업쓰레기가 되었네요. 어서 죽었으면 좋겠어요"
전남 화순의 고려병원에서 11년 째 진폐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조영종 (69)씨.
전남 화순광업소의 지하 막장에서 청춘을 바친 조 씨는 지난 98년 불치의 병이라는 진폐증 판정을 받았다.
조 씨는 "청춘을 다 바쳤죠. 어디 갈지도 모르고, 배우지도 못했고, 그래서 삽 들고 탄 파고, 그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죠.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탄 한 톤이라도 더 캐려고 발파 연기와 탄 가루로 허기진 배를 채웠어요"라고 말했다.
60~70년대 국가 유일의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을 캐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광부들은 한 때 산업역군으로 추앙받았다.
당시 연탄이 주요한 에너지원이었기에 광부들은 석탄 산업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한 지금 산업역군들은 과거의 영광은 뒤로 한 채 날짜 없는 사형선고라는 진폐증에 신음하고 있다.
진폐증은 먼지가 많은 탄광 같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으로 탄 가루가 코와 기관지를 통해 노동자들의 폐에 들어가 발생하는 죽음의 병이다.
진폐는 점차 호흡 기능을 떨어뜨리고 합병증을 가져 오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치의 병'으로 불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탄 가루가 박힌 폐가 제 구실을 못하고 호흡 기능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의 견인차라는 자부심에 마스크와 같은 기초적인 방진 장비 하나 없이 지하 막장에서 탄을 캤던 광부들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씩 진폐로 쓰러지고 있다.
조씨는 "우리가 입사했을 때는 진폐에 대해 몰랐고 교육도 없었고, 방진 마스크나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역시 화순광업소 막장에서 30년을 채탄작업에 종사한 김정두 씨도 "물을 뿌려도 먼지가 계속되고, 마스크 안 쓴 사람이 태반이었다"며 당시 탄광의 열악한 근로여건을 증언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진폐증으로 요양승인을 받은 환자들은 3천700여 명.
그러나 합병증 판정을 받지 못해 진폐환자로 분류되지 않지만 진폐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포함하면 3만 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많은 광산이 문을 닫았지만 10년 전과 비교할 때 진폐환자는 50% 이상 늘었다.
한 때 산업역군으로 추앙받던 진폐환자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이들은 이제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 산업쓰레기가 되었다며 사회를 향해 분노 어린 하소연을 하고 있다.
진폐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주응환 회장은 "나라에서 산업역군이라며 다 해준다고 하다가 지금 와서는 연탄재 취급한다"며 "우리가 산업쓰레기가 됐다"고 자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