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천사 남편을 잃지 않게
관리자
2007-04-15 17:11:18
조회수 4,592
지난달 17일 서울 신도림동의 한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숨지고, 60명이 부상을 당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30층짜리 건물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여서 인명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소방관들의 신속한 구조와 초기 진화 덕분에 참사는 면했다.
최근 전남 고흥군 소록도 연도교 공사현장에서도 콘그리트 타설 작업 중 다리 상판이 무너져 내려 5명의 근로자가 생명을 잃고 7명의 근로자 부상을 당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대형 사고를 접할 때마다 산업안전보건 정책 담당자로서 죄송한 마음과 아울러 하루 빨리 우리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추방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특히 신도림동 화재 현장에서 부인을 먼저 구하고 숨진 ‘천사 남편’의 안타까운 사연은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현재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지만 이들 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빚은 산업재해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평소 안전에 대해 무관심하다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여기저기서 안전불감증 운운하며 비판하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고 다시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매일 7명이 사망하는 산업현장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이처럼 크고 작은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수는 2005년의 경우 8만5411명에 이른다. 이중 사망자수는 2493명이나 된다. 하루 평균 산업재해로 인해 7명이 사망하고 230여 명이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고 있는 셈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하여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1981년과 비교하면, 산업재해자수는 3만2500여명이 줄어들긴 하였지만,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산업재해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재해를 당한 개인과 그 가족에게는 인간의 존엄성 상실과 가정의 해체를,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력 손실과 생산성 저하를 가져오며,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도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무려 15조1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2000년 7조3000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이다.
따라서, 근로자 개개인의 생명을 지키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한편, 기업·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어떤 정책보다도 최우선적으로 산업재해예방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부는 산업재해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사업장 규모별 차별화된 ‘맞춤형 안전관리’와 선택과 집중에 의한 산재예방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노사 자율·협력적 예방활동을 원활히 전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최근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고령자·외국인 근로자 등 산재취약계층별로 특화된 재해예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사망재해를 줄이기 위해 건설·조선·화학 등 위험 업종별로 특화된 사전 예방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석면에 의한 근로자 건강장해 및 작업관련성 질환 예방 등 직업병 예방과 건강진단제도 개선 등을 통하여 근로자 건강 보호·증진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고는 반드시 경고가 먼저 온다
그러나 산재예방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산업재해의 1차적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노사가 함께 하여야 한다.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참여와 협력을 통해 자율적인 안전관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때 그 효과는 극대화 될 것이다.
사업주는 1900년대 초 안전제일을 경영방침으로 도입한 U. S. Steel의 E. H. Gary 회장처럼 안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근로자를 산업안전보건의 파트너로 받아들여 대등한 동반자의 입장에서 산재예방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근로자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의 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고, 사업주의 안전관리 활동에 적극 협조하고 안전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 산업현장에서 노사정의 산재예방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안전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산업재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업무와 관련하여 회의나 토론을 하면서 산업재해는 ‘운이 나빠 발생하는 것이다’라거나, ‘산업활동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작용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산업재해는 결국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인재(人災)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방이 가능하다고 본다. 작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발굴하여 재해원인을 제거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안전관리 활동을 한다면 얼마든지 무재해를 이룰 수 있다.
하인리히의 아차사고 이론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1930년대에 미국의 보험사고 전문가였던 하인리히가 고객들의 사고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1번의 사망 또는 중상해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다치지 않았지만 일상적인 300번의 사고가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산업재해가 단순한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아차 사고(Near Miss), 즉 생명 또는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그러할 개연성이 있었던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사전에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위협하는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여 기계·설비의 결함, 안전장치 미부착과 같은 물적(物的) 불안전한 상태를 제거하거나, 안전교육 등을 실시하여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면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3륜 노사정
노사정을 산업안전보건 삼륜(三輪)이라고 부른다. 세 개의 수레바퀴가 무재해의 목표를 향해 조화를 이루며 굴러갈 때 재해 없는 안전한 일터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의 산업재해 예방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각 주체가 산업재해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안전관리 활동에 의해 반드시 예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노사정이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각자의 임무와 역할에 최선을 다 한다면, 다시는 신도림동 신축현장 화재사고나 소록도 교량 붕괴사고와 같은 비극이 우리 산업현장에서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