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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생긴 상처 치료하는 의사 출신 변호사 박영만

관리자 2007-04-17 19:25:24 조회수 24,844
“일터가 병원에서 변호사 사무실로 바뀌었을 뿐,
사람들의 아픈 곳을 치료하는 건 같아요”
박영만 변호사는 한때 촉망받는 산업의학 전문의였다.

결혼 후 사법고시를 준비, 이제는 병원이 아닌 변호사 사무실에서 마음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박영만 변호사를 만났다.

“의사로서 산업재해를 당한 환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도 남들처럼 편하게 사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 힘들게 의대를 졸업하고 시작한 종합병원 레지던트 생활은 그에게 안정된 미래를 보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보장된 미래’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의료사고, 산업재해 분야 전문 변호사 박영만(39). 그의 또 다른 이력은 한국안전환경연구원 산업보건의다. 한때 촉망받는 산업의학 전문의로 활동했던 그가 돌연 의사를 그만두고 사법고시를 준비, 현재 의료사고, 산업재해, 보험사고, 환경소송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그는 의대 졸업 후, 여의도성모병원 진폐병동에서 근무했다. 진폐병동 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병마와 싸우며 고통받는 환자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나이가 많은 노인 환자가 많은 진폐병동은 날씨가 추워질수록 응급 환자가 많이 생겨요. 그분들은 가벼운 감기도 바로 폐렴으로 이어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죠. 짧은 시간 동안 환자의 상태를 판단, 치료 방법을 결정해야 해요. 잠시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죠. 그래도 육체적으로 힘든 건 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어제 웃는 낯으로 만났던 사람이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그가 근무하던 병원 혈액암센터에 석유화학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가 암으로 입원했다. 당시 그는 환자의 암 발병 원인을 벤젠 중독(Benzene Poisoning)으로 결론 내리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울산 작업장으로 내려가 조사를 하고 소견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노동부에서는 ‘우리법상 기준 이하’라는 이유로 담당 의사의 소견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행히 법원에서 그의 소견서를 인정해 환자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게 됐다고.

“그나마 그 환자가 일하는 곳은 대기업이라 작업환경이 나은 편이었어요. 그보다 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위험에 노출된 채 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훨씬 많죠. 대부분 업무상 재해에 따른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구요. 그런 분들에게 의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소견서를 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산업재해는 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이미 일어난 재해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한 가장으로서 생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산업의학과란 이름도 처음 듣는 분이 많으실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한데, 인기 학과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학창 시절부터 조금 비딱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좋더라구요. 때문에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저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만족하고 살지만 아내는 제가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 결혼 후, 줄곧 가장 역할을 대신했거든요. 특히 딸이 둘 있는데 한 번도 출산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 지금까지 아내를 포함해 주위 분들에게 많은 패를 끼쳐서 다 갚으려면 평생 해도 모자랄 것 같아요(웃음).”

“의료사고를 당한 보호자들은 보상보다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죠”
의사 출신 변호사 박영만은 산업재해와 함께 의료사고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의료사고는 열 번 싸우면 열 번 다 환자가 진다고 보면 맞아요. 같은 의사라고 해도,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면 자세히 알기 힘들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인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의료사고를 당하게 되죠.”
박 변호사는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 의뢰인들이 진정 억울해하는 부분은 의사와 병원 측의 태도라고 한다.

“의료사고를 당한 의료인 대부분은 보상보다는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많은 의료사고가 장기 입원 환자보다는 잠깐 입원해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서 일어나는데, 만약 의사와 환자, 보호자 사이에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면 저를 찾아온 의뢰인들이 그렇게 억울해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의료사고가 났을 때 보호자를 외면하기보다는 진심 어린 사죄의 말 한 마디만 했어도 보호자의 억울한 심정이 어느 정도 풀어지지 않을까요? 물론 작금의 의료제도 아래서 의사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수술 전후에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박 변호사는 과거 함께 공부하고 근무했던 동료 의사들을 만나면 “누구 편이냐?”는 농담 섞인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의 아픈 곳을 치료하던 의사 박영만. 이제 그는 몸에 생긴 상처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다. 그의 따뜻한 손길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은 응어리를 어루만져주길 바란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메디컬 법률사무소 의연(02-598-4600)